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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선생의 교실 밖 세상] 멘티 찾아 떠난 하와이 여행

나는 L씨의 멘토다. 그녀가 그냥 사람들 앞에서 멘토라고 소개한 후 그렇게 된 거다. 지난 베테런스 연휴에 그녀를 만나러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있는 힐로로 잠깐 나들이를 했다. 나중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은데 와서 한 번 같이 가보자는 말에 멘토라는 묵직한 직함 상 두말 없이 짐을 쌌다. 목요일 밤에 도착하니 온 사방이 깜깜하다. 시골 간이역처럼 작은 힐로 공항에서 반가움에 울음인지 웃음인지 범벅이 된 미소가 귀까지 걸린 그녀는 들꽃으로 손수 만든 레이를 부스럭거리며 비닐 봉지에서 꺼내 내 목에 걸어 주었다. 밤새도록 그녀와 근황 토크를 하면서 같이 울고 웃다가 창밖을 보니 깜깜한 밤하늘에 수놓은 별빛이 쏟아지는데 '휘황찬란'이란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는 밤하늘이다. 수북이 쌓일 것만 같은 무리진 별들의 야무진 모습을 그냥 넋 놓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하나 키우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녀가 말하듯 아슬아슬했던 아들의 사춘기를 숨이 턱까지 차도록 힘겹게 보냈다. 그리고 아들이 취직을 하기까지 또 맘 졸이며 말도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지난 시간이 '이제 생각하니 별것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앞이 안 보이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아들이 결혼하여 착한 색시까지 얻었으니 감사함 뿐이라고 말한다. 가끔은 엄마 걱정도 하면서 용돈도 보내주는 아들을 보면서 그녀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것 같았다.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나를 위해 미리 닭발을 구해 뼈가 흐물거리도록 푹 고아서 묵을 만들어 놓고 "멘토를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이라며 먹어보라고 한사발 내놓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다 벌겋게 된 눈을 비비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귀한 보약을 한점 한점 들었다. 그녀는 늘 누구에게든 내가 자신의 멘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나와 굴곡진 인생을 함께 견뎌냈음을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는지 늘 그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은 인생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계획과 일상을 나누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로 더는 말이 필요 없고 그 어떤 여행 계획도 필요 없이 그냥 함께 있는 그 시간에 만족했다. 그녀의 운전 실력을 믿지 못하는 나는 도착한 다음날부터 직접 운전대를 잡고 함께 청정 대자연의 하와이 섬을 보고 느꼈다. 마침 우기여서 아침부터 계속해서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을 쓰고 열대 기후의 진한 땅 기운이 스멀대는 대자연의 숲 속에서 땅의 힘찬 기운을 받기도 했다. 길가다 차를 세우고 열대 과일을 파는 곳에서 두리안과 망고스팀을 먹어보기도 했고 과즙과 향이 일품인 하와이안 망고와 파파야 그리고 사이즈가 엄청 큰 아보카도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내겐 멘티가 만들어준 정성 가득한 닭발 묵이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앞이 안보여서 운전을 못 해 길가에 세우고 비가 그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녀와 함께 산을 넘었던 두 시간 동안의 운전이 기억에 새롭다. 그 짜릿했던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멘토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와 별빛이 흐르던 밤에 두 손 벌려 주워 담은 별들을 서로의 주머니에 가득 채워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위험천만의 빗속을 뚫고 그 험한 산을 넘어가며 가슴 졸였던 순간도 그녀와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다시 교육 현장으로 돌아온다. 나에게 오는 수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며, 또 누군가의 멘토와 멘티가 됨을 기대하면서 다시 현장 속으로 복귀다.

2017-11-26

[지경희 교사의 교실 밖 세상] 칼리지 학비 면제 제도 활용해야

그동안 12학년생들을 맡아서 졸업을 앞둔 그들과 함께 뛰어다녔다면 올해는 9학년생을 맡게 돼 맘이 좀 편해지려 했다. 하지만 학기 시작 두 달 만에 담당 카운슬러의 개인 사정으로 12학년생 절반과 9학년생을 추가로 맡게 됐다. 그래서 올해는 학교에서 제공되는 '개인졸업플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100% 졸업을 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좀 더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해에는 교육국의 예산이 부족해 방과 후 프로그램이 많이 축소되었다. 그나마 커뮤니티에서 후원하는 프로그램이 유지되고 있어 학부모들이 관심만 있다면 충분히 도움받을 수 있다. 9학년의 경우, 자녀가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과목 낙제를 하거나 학교에서 행동 문제로 교사들에게 전화를 받는다면 상담교사를 찾아 도움을 구해야 한다. 특히 9학년은 자녀의 학교 적응이 학업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학교 수업은 더없이 중요하다. D나 F를 받으면 보충이 가능하지만 C를 받으면 보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A나 B를 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대학 원서를 쓸 때는 이런 문제들이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는 9학년 학생들의 가을 학기 성적이 좋지 않으면 보충 수업을 하도록 적극 권장한다. 보충수업은 졸업학점을 따는 방편이 되기도 하지만 보충 수업을 들으면 현재 듣고 있는 수업에도 도움이 되고 공부하는 습관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교사들에게 행동으로 인해 주목을 받고 있는 9학년 학생들과는 면담을 하면서 전문 상담가에게 의뢰를 하거나, 학교 내 상주하고 있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의뢰를 하기도 하고 또 부모들을 면담해서 필요하면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학부모 교실에 적극 추천하기도 한다. 교육국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이중언어 교육이다. 몇 년 전부터 이민자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점차 축소되면서 이민자 학생들도 학교 생활 적응이 한층 어려워졌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 방학에는 이민자 학생들을 위해 영어와 문화적인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운영됐지만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다. 그저 보조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영어 수업을 도와주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그들이 4년 혹은 5년 안에 졸업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12학년 학생에게 기회는 더 넓어졌다. 학교에서는 100% 졸업률을 목표로 한 보충수업 프로그램(Credit Recovery)을 운영하고 있다. 토요일 혹은 0교시 수업으로 학생들은 부족한 학점을 메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작년에도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많은 학생들이 도움을 받았다. 인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는 1년간 수업료 면제 제도를 도입해 12학년생들의 2년제 칼리지 진학을 적극 돕고 있다. 그 의미는 100% 고교 졸업률에 더해 서류 미비자 학생들을 포함한 저소득층 학생들까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12학년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고교생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뒤처진 학생들은 보충 수업을 통해 졸업을 준비시키고 상위권 학생들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대학 준비를 더 강화하도록 만드는 전략은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교육국은 그 어느 때보다 고등학생들의 졸업률을 올리고 대학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자녀의 학교생활이 성공하는 지름길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업 상황을 잘 지켜보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자녀를 담당하는 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올 한해도 자녀의 성공을 위해 교사들과 함께 힘써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거듭 강조하지만 자녀 교육에 '당장'이란 말은 없다. 자녀 교육은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도 함께 성장하며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2017-02-05

[지 선생의 교실 밖 이야기] 연휴동안 학기말 시험 대비해야…

LA통합교육국(LAUSD)의 가을 학기 15주차 성적표가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에 발송된다. 이 연휴가 지나면 곧장 학기말 기간이다. 15주 성적이 나온 후, 2주 동안 수업을 하고 12월 12일부터는 학기말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다. 가을 학기말 성적은 18주 성적이 된다. 그리고 12월 16일이면 수업을 모두 마치고 3주간의 겨울방학을 맞는다. 추수감사절 연휴는 학기말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학부모는 자녀가 얼마 남지 않은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게 연휴동안 가족과 시간도 보내면서도 밀린 과제물이나 프로젝트를 하거나 학기말 시험에 대비해 미리 공부하도록 이끌어주면 좋겠다. 대학 준비를 9학년부터 꼼꼼히 준비하는 경우, 학부모들은 학교 웹사이트나 교육국 웹사이트(lausd.net)를 통해 학교 행사나 학사 일정을 확인하고 가정의 행사나 개인적인 일 등이 자녀의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해야한다. 치과나 병원 등 정기 검진 역시도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나 휴일, 혹은 방학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방과 후나 토요일에 병원 약속을 잡는 것이 수업을 빼먹지 않는 길이다. 학교는 학생이 결석하면 보충 과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 맞지만 과목에 따라 교사들은 재시험이나 숙제 등을 늦게 제출하는 걸 허용하지 않기도 한다. 결석을 해야 한다면 미리 교사에게 알리고, 시험을 봐야하는 경우는 점심 시간이나 방과 후에 따로 잡아서 미루지 말고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다. 결석한 후에는 학생들이 따로 과목 교사를 만나 결석으로 인해 보충할 것이 있는지 확인해야한다. 특히 11학년이나 12학년 자녀라면 미리 교사에게 연락을 취해 자녀가 결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한다. 12학년 학생의 경우, 11월 30일로 UC계열 캠퍼스 대입 원서가 마감한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지망 대학 원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그동안 준비했던 대입 에세이에 수정할 곳이 없는 지도 확인하는 시간을 가자. 개정된 UC 지원서의 에세이의 경우 8개 질문 중에서 4개를 선택해야 하고 내용은 각각 350자로 쓰도록 제한하고 있다. 대학은 에세이를 통해 학생 개개인의 경험과 관심 분야,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 등을 더 많이 알고 싶어하니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의견을 쓰면 된다. 너무 형식적이거나 모범 답안보다는 자신이 어떤 학생인지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쓰는 것이 좋겠다. 에세이 분량이 짧아진 대신 좀더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써야한다. 무료연방학자금 (FAFSA) 신청의 경우, 올해 10월부터 신청서를 작성해 접수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오픈해 놓고 있다. 2015년 세금 보고서를 참고로 작성하면 되지만, 2016년도 세금보고도 미루지 말고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재정보조는 자격이 되는 학생에 한해 무료로 학비를 보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가족의 수입이 많다고 생각이 되더라도 모든 학생이 신청하도록 한다. 가족의 수입에 따라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제한돼 있지만 재정보조 서류를 통해 학비뿐 아니라 학교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등 다른 재정지원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자격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서류가 되기에 재정보조 신청은 누구나 하는 것이 좋겠다. 킨더가튼부터 12학년까지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무료급식 프로그램도 신청하자. 가족의 수입이 많아 자격이 되지 않거나 학교 급식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학생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학교의 예산 규모를 결정짓는 하나의 잣대가 되므로 가능한 모든 학생이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 추수감사절 연휴가 저학년생에게는 학기말 성적을 대비하는 기간이지만, 대학 입학원서나 재정보조 신청을 앞둔 12학년생 역시도 일주일의 휴가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얼마 남지 않은 2016년도를 생각하며 한해의 마무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2016-11-13

[지선생의 교실 밖 세상] 나를 돌아보는 과정 있어야 성장 해…자신에게 질문하고 답 찾는 해 되길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못 읽고 있다가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읽으면서 그간 내가 많은 여행을 하며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을 하나씩 마주하는 기쁨을 누렸다. 2011년 여름, 스페인 산티아고로 순례여행을 다녀온 직후 나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잔재미가 심드렁해졌던 기억이 있다. 29일 동안 걸으며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들이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순례 길을 걸으며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라는 생각을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하고 또 했었다.'왜 나는 이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지', '나는 왜 매번 그런 질문을 안고 또 여정을 시작하는 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피레네산맥을 넘어가며 만난 폭풍우 속에서 신발에 물이 차서 떨그럭거리고 사방으로 내리치는 비바람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았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산길을 헤집으면서도 저 멀리 보이는 하얀 불빛의 알베르게(숙소)를 향해 걷고 또 걸었었다. 거기가 그날의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파울로 코엘료가 묵었던 숙소에서 그가 창밖 넘어 보이는 황량한 들판에서 가졌던 생각은 무엇이었으며 그는 그 생각들을 어떻게 그의 삶 속으로 맞이했을까 하는 생각들을 걷는 내내 했더랬다. 아름다운 밀밭 길 사이로 걸어가면서도 나는 내가 왜 걷는지 생각했고, 눈앞에 온통 해바라기꽃이 지천인 꽃밭을 걸으면서도, 한낮 땡볕의 허허 벌판에서 혼자 줄달음질 치면서도 나는 그 질문과 사투를 벌였었다. 그래도 풀리지 않던 질긴 그 인연을 우연하게 마주한 책을 통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굴욕은 인간세계에서는 항상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의 의지가 도전을 받고 우리의 소망이 좌절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P215, L 14) 순례여행을 마치고 나는 내 자신의 한계에 맞부닥쳐서 겨우 목숨부지하고 돌아와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대자연 앞에서 가졌던 신비로운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제 다시 정리해보니 그러한 감정마저도 나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자연이란 거대함에 머리 숙이고 그렇게 낮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연의 도움을 받아 그런 경험을 통해 매일 새로워지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통해 한 뼘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처한 이 환경에서 잠시 탈출하여 내 자리를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쉼을 가졌다는 것이다. "여행이란 우리가 가지는 경험에서 이제까지 무시해 왔던 넓은 영역 위를 날아볼 수도 있고 일상적인 일 속에서는 이르지 못했던 높이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주위의 낯선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P 81, L 7) 내게 익숙지 않은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이웃들과 낯선 장소, 그리고 자연은 나를 성장케 한 촉매제였다. 길을 걸으며 내 시선에 들어왔던 들꽃 하나도 내가 잠시 멈추고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마지막에 니체의 말을 인용한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한다'는 그 말을 곱씹는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기대 이상의 수확을 올려서 나는 그 기운을 받아 학생들과 남은 한 학기 전쟁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016-01-03

[지선생의 교실 밖세 상] 코스타리카에서 도전한 나의 한계…커피콩 보며 농부의 마음 배우기도

지상의 낙원 그리고 중남미의 스위스라는 호칭이 무색하리만큼 정겹고 소박한 코스타리카에서 추수 감사절 연휴 동안 맘껏 마음을 풀어헤쳤다. 주민들은 순박했다. 휴가 전에 학생들의 대학 원서를 봐주고 학교 일을 바쁘게 마감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고마운 선물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짚라인(Zipline) 도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커피나무 경험이다. 짚라인은 총 13구간이 있는데 길이 50미터와 높이 1미터의 쉬운 코스부터 시작했다. 40명 모두가 한 사람씩 줄에 매달려서 제 2구간까지 줄타고 가는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도 아무 저항 없이 나서고 그럴싸하게 들리는 '한계에 도전해 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었다. 말이 좋아서 도전이고 한계였다. 나는 첫 발을 땅에서 떼기도 전에 이미 안 될 것을 직감했다. 짜릿한 하늘을 나는 즐거움이 나에겐 두려움 그 자체였다.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들도 도전해서 그 스릴을 맛봤다는데 나는 자전거는 잘 탄다. 그러니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고 한 시간을 맴돌다 19번째로 줄을 섰다가 내려와서 다시 40번째로 나서서 줄에 매달리다 교관에게 혼만 나고 내려왔다. 사실 나는 이런 열등감에 한번 풍덩 들어갔다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릴만큼 생활이 뒤엉켜버린다. 그래도 그 느낌이 왠지 기분 좋다. 이런 엉킴은 한동안 지속할 것임이 분명하다. 왔다갔다 일이 손에 안 잡혀서 내 마음을 그야말로 '고장 난 벽시계'에 시간을 파묻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대학에 안 가겠다' 혹은 '어려운 과목을 택하지 않겠다'고 하면 강제로 떠밀지 않는다. 강요하는 순간 그들의 책임은 고스란히 공중으로 분해되어 애꿎은 내 속만 벅벅 타게 마련이고 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이겨낸다는 것이 내겐 또 다른 무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커피 나무와의 만남이었다. 커피는 1미터 높이의 나무에 빼곡히 매달려 있는 열매인데 잘 익은 빨간 커피 체리를 따서 입에 무는 순간 커피나무니까 커피맛이 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달짝지근한 과즙이 너무 생소했다. 그리고 과즙을 먹고 난 후 미끈거리는 과육을 수조에 넣어 불리고 발효시켜 건조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코스타리카는 화산암의 경사진 고산지대의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가 커피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서 정부가 법으로 만들어 제일 좋은 커피 품종인 '아라비카' 종의 커피나무만을 재배한다고 한다. 이곳의 커피는 향기가 풍부하고 와인 맛이 감도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질 좋은 커피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한다. 커피 종류에 따라 혹은 어떻게 추출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서 관심은 있지만 그런 배움의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나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로 남겨두었었다. 그리고 남이 만들어 주는 커피에 내 입맛을 맞춰버리고 신경을 꺼버렸었다. 우연히 이런 나의 바람이 통했나 보다. 가이드를 맡았던 서종현씨는 커피 전문가이자 미래 커피 농장을 꿈꾸는, 겉은 까칠해보이지만 마음이 착한 농부였다. 서씨는 우리 여행자들을 위해 그의 커피이야기와 그가 만든 커피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본업은 커피 사업이지만 바쁜 여행철일 때는 간혹 가이드로 뛰기도 한다는데 서씨는 내가 보았던 무수한 여행 가이드 중에 단연 돋보였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코스타리카를 설명했고 담백한 생각, 그리고 억지를 부리지 않고 쉼을 주고자 노력했던 모습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커피에 대한 정보는 덤으로 얻은 귀한 경험이었다. 커피나무를 키우면서 겪는 문제들, 그리고 농부의 마음까지. 그 콩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애틋하고 잔잔한 마음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커피를 음미할 때는 그 농부의 마음이 생각나서 대충 마시거나 먹다가 쏟아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과일 향이 풍부하고 와인 맛이 입속 혀끝까지 감아 돌아 느껴지는 코스타리카의 언덕배기에 줄지어 늘어선 커피콩 나무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폼 잡고 짚라인 타려다 스타일만 왕창 구겨버린 일만 빼고 말이다.

2015-12-06

[지 선생의 교실 밖 세상] 방황하는 10대…돌아갈 곳을 만들어주자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 또 수많은 정보 때문에 자녀교육의 정답은 알고 있지만 막상 자신의 자녀에게는 그 방법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통하지 않아 다른 비방이 있는지 묻는 것도 부모의 마음이다. 자녀를 가장 잘 아는 부모가 자녀교육의 열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마음이 애틋해서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갖고 있는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문제해결 방식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면, 나는 먼저 부모가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에 도움을 구했는지 묻는다. 그리고 학교 관계자와 만나 목소리 톤을 낮추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면서 방법을 찾아 보았는지도 묻는다.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학교에 도움은 커녕 학교 관계자와는 이야기도 못해보고 주위에서 얻어들은 이야기로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본인들의 생각만 이야기하신다. 때문에 자녀의 교육 방법에 앞서 타인과의 대화 소통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거나 그런 대화를 이어나가면 대부분은 부모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한다. 언젠가 누구의 소개로 전화했다며 자녀를 한 학년 낮추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해왔다. 부모는 나름 모든 정보를 수집했고 자녀도 동의를 했으며 가족과도 모든 결정은 끝났으니 마지막으로 그 방법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그 방법에 대한 대답은 제쳐놓고 왜 그런 결정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부모의 결정에 대한 진심 어린 대화를 가졌고 그 어머니는 자신의 결정을 바꾸었다. 요즘은 '부모의 기대가 너무 커서 부담이 돼요'라는 내용의 상담은 거의 들을 수 없다. '내가 알아서 세상을 살아갈 테니 관심 끄십시오'라든가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자신에게 망신을 주어서 마음이 우울하다' 혹은 '나도 내 맘을 어쩌지 못하니 다 나을 때까지 학교를 당분간 휴학하고 싶다'는 등의 대담한 상담이 오고간다. 이런 학생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일이 잦아진다. 가정 상황으로 엄마를 떠나 위탁가정에 맡겨진 학생이 있었다. 말이 없고 온순해서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까 걱정스러워 동료교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위탁가정을 옮기면서 결석을 하게 되어 나는 그가 각 과목 교사에게 과제물을 대신 받아 집에서 밀린 공부를 하도록 조정을 해줬다. 교장에게도 소개를 했다. 나는 학생에게 "한국어를 잘 배워야 한다. 그리고 네가 한국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과 "한국말을 잘 배우면 이 다음에 엄마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또 아픈 엄마를 이해해야하고 고교를 졸업하면 네가 엄마를 잘 보살펴야한다"며 마음 그득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봄 방학이 지나 학교에 돌아오면 그가 좋아하는 물 냉면을 만들어 먹자고 약속했다. "물 냉면 먹자"라는 말에 학생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국어 선생과 나는 학생의 마음을 토닥이며 요즘 학생들의 새로운 모습에 서로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그도 언젠가는 이해하겠지 하면서. 요즘처럼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해서 따라가기 힘든 애들에게 무슨 골치 아픈 상담이 필요할까. 그런 자녀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부모 마음은 또 어떨까 싶다. 그냥 그들의 마음을 한번 툭 건드려주는 것이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위안이지 싶다. 그들에게는 지금 먹고 싶은 살얼음이 둥둥 떠있는 시원한 물 냉면 외에 무슨 생각이 더 간절할까. 골치 아픈 십대 청소년들에게도 언젠가 돌아가 안기고 싶은 곳이 엄마품이기에 그때까지 주위에서 그들이 그런 마음을 지켜가도록 그냥 모르는 척 해주면 된다. 가끔 그들의 꽁꽁 닫힌 문을 두드려 보는 것, 그것이 관심일 것 같다. 지경희 카운슬러/LA고등학교

2015-04-26

지경희 교사의 교실 밖 이야기…우등 전학생의 적응기

한인 부모들은 자녀가 소규모 사립대학에서 학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대학 생활을 즐기며,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이 쉽고 학비가 가능하면 안 드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성인이 된 자녀가 대학 사회에서 부딪히며 성장해 가는 과정이 자녀의 미래와 미 주류 사회를 향한 디딤돌이 될 수 있기에 그들의 대학 선택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올해 졸업을 앞둔 A는 9학년을 마치고 10학년 초에 LA 인근 매그닛 학교에서 전학 온 여학생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소란스럽지 않게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소리없이 제 몫을 해내는 그녀는 사랑스럽고 귀엽다. 전학 오기 전 나는 어머님과 A와 여러 차례 상담을 했었다. 내가 걱정했던 건 재학 중인 학교에서 수준 높은 과목을 택하고 있어서 학생이 수업과정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였다. 또한 10학년에 주요 AP 수업을 다 택해버리면 11학년이나 12학년이 되어 행여 후회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처음엔 만류를 했었다. 나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놓았지만 어머니와 A는 다른 긍정적인 이유를 들면서 전학 의사를 밝혔다. A는 10학년 때 AP과목을 2개 택하고 아너 과목을 3개 택하여 아너 화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 A를 받았다. 11학년에는 5개의 AP과목에서 A를 받았고 가을학기에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들은 스피치 과목도 A를 받았다. 그리고 5개의 AP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12학년에는 영어와 사회과목 외에 수강할 과목이 없었지만 그래도 4과목 수업을 들으며 대학 원서 준비에 시간을 충분히 활용했다. 12학년에 4개의 AP 과목을 수강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녀처럼 10학년과 11학년에 주요 과목을 수강하고 12학년에는 AP과목 수를 줄이면서 대학 원서 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11학년을 마치고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주관하는 리더십 프로그램 'The Junior Statement'에서 3주간 여름 학기를 보냈다. 교수가 진행하는 토론 위주의 수업을 듣고 15장의 에세이를 써야했는데 담당 교수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도움을 받았고 그런 경험을 통해 미리 사립 대학에서의 학교 생활을 느껴볼 수 있었다. A는 12학년 학생 중에서 2등과 현저하게 비교되는 1등이다. GPA는 4.32점이고 SAT성적은 2300점이다. 영어는 730점, 수학은 800점, 그리고 에세이는 770점을 받았다. SAT II는 수학 II에서 800점, 한국어는 740점을 받았다. 4년 동안 총 10개의 AP과목을 택해 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AP 시험에 3점 이상을 받았다. 보통 전학 온 우수 학생들은 친구나 교사 관계, 또는 학교 활동에 적극적이기가 쉽지 않지만 그녀는 수학과 과학 클럽을 활동하며 적응도 잘했다. 그런 그녀가 LA 인근 명문 사립대에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조기 전형에 합격했다. 사실 전교 1등이면 동부 명문대에 미련을 가질 수도 있는데 학부에서는 맘 편히 공부하고 싶다며 조기 전형을 택했다. 합격이 되면 무조건 가야하는 조건 앞에서도 학교 측과 학비 문제를 의논하는 그녀의 배짱과 뒷받침하는 실력,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그녀가 참으로 대견하다. 간혹 공부를 잘하는 한인 학생이 스스로 자만해져서 친구 관계가 틀어지고 교사에게 무례한 언행으로 스스로 좌초하게 하는 경우와 부모님의 지나친 간섭으로 학생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를 지켜봤기에 낮은 자세와 긍정적인 생각으로 조용하게 소리없이 자기의 할 일을 다했던 그녀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3년 내내 조심스러웠다. 어머니 역시 그런 상황에 보조를 잘 맞춰주어서 자녀가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그것이 4년을 잘 준비하여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이유이다.

2015-03-08

[교육]지선생의 교실 밖 이야기…성적에 기대지 말고 도전정신을 키워라

학부모들이 급하다며 전화로 상담을 요청할 땐 대개 11학년 1학기, 15주 성적표를 받는 추수감사절 연휴 전과 10학년 2학기, 봄방학 전이다. 이런 경우 상담은 부모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보다는 일방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들어주는 것에서 끝난다. 부모님은 죄송하다며 연신 수화기 넘어 고개를 굽실거리지만, 들어주는 나는 위험 천만이다. 학생을 만나 이야기해본 것도 아니고 누군지도 모르는 부모님과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괜시리 내가 미안해진다. 전화상담을 요청한 한 어머니는 초중고교를 영재학교에 다닌 딸이 11학년에 너무 많은 AP과목을 택하고 있다가 성적이 좋지 못해 위기에 처했으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지금 'C'를 받고 있는데 담당 과목교사는 자녀가 더이상 'A'나 'B'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UC 계열이라도 가려면 GPA 3.0 이상을 유지해야 하니 전학가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어머니는 "이미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은 다해봤다. 자녀를 달래도 보고 격려도 했으며 과외도 필요하면 해주겠다고까지 해보았으며 때론 엄마가 잘못했다 혹은 미안하다는 얘기도 해봤으니 부모님으로서는 모든 노력은 이미 다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분은 사무실을 직접 찾아주셨다. 그 어머니는 대뜸 "나는 내 아이가 영재인 줄 알았다"며 "아이의 이야기를 진작에 들어주고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조금만 했더라면 자녀가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분의 자녀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반에 들어가서 교사들의 칭찬을 무수히 들었다. 9학년 때까지는 미국인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운동부며 각종 과외 활동에 두각을 나타냈다. 11학년이 되면서 교회를 통해 혹은 다른 외부 활동을 하면서 한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보니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잘했던 그들은 지금 일하면서 편하게 공부하는 것 같고 용돈도 벌면서 2년제 대학에 가서 UCLA에 편입할거라는 얘기를 들으며 아무리 애써도 'A'나 'B' 학점이 안나오는데 왜 자신이 굳이 영재학교를 다녀야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10학년 성적부터는 대입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에 학생 간의 경쟁도 심하지만, 교사들 역시 교육국과 가주 교육부의 기준에 맞춰 커리큘럼을 짜야하고 또 AP과목인 경우 AP 시험 응시율과 합격률 등 수업 외 학교 간의 경쟁까지 신경을 쓰느라 학생 개개인의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AP 과목은 높은 수준의 커리큘럼을 통해 학생 수준을 끌어올리며 대학진학후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기초 실력을 다져주는 데 있다. 그래서 대학은 학생이 영재학교에 다녔는지, 혹은 몇 개의 AP과목을 택했는 지보다 '어떤 학생'인지에 관심이 있다. 특히 많은 우수한 학생과 부모가 영재학교에서 그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대학은 어떤 방식으로 학생이 문제를 해결하고 도전했는지를 본다. 부모는 내 자녀가 영재라고 생각하지만 대학은 '쏘 왓(SO WHAT)"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인 학생들은 그저 '우수하다'는 사실 외에는 내보일 것이 없을까. 그들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또 성공할 수 있는 요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그 문턱에서 그냥 주저앉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실제로 수많은 우수한 한인 학생들이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눈앞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영재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녀가 영재학교에서 'C'를 받더라도 가슴 덜컹하지 않고, 자녀보다 공부 못하는 학생이 명문 UC를 가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두둑한 배짱으로 끝까지 자녀에게 도전정신을 권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 결과가 'C'면 어떻고 'D'면 또 어떤가. 영재반에서 살아남은 그 자체로도 우수한 학생이다. 'D'를 받았어도 또 다른 길이 열려있는 것이 미국 교육의 장점이다. 많은 대학에서는 그러한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하여 또 다른 교육과정을 통해 그들이 계속해서 도전을 하도록 돕고 있다. 미 공립교육의 힘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 결과가 실망스럽더라도 졸업 후 비상할 수 있는 충분한 저력이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자녀가 영재학교에 다니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닌, '어떤 인간'이 되는가에 부모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경희 카운슬러 LA고등학교

2014-12-21

지 선생의 교실 밖 세상…저소득층 위해 재능기부하는 원장님

교육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잡다한 학교행정으로 인해 명문 대학이나 사립대학 중 학비가 싸고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대학을 찾아 맞춤형 교육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위 5%의 학생만이 사립대학 혹은 명문 주립대학에 진학하고 상위 30% 정도의 학생들이 주립대학에 진학하는 실정이니 소수의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을 찾아주기 위해 상담교사가 고민하는 일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공립고교에서는 더 많은 학생이 명문 대학에 진학해 학교의 이름을 빛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더 더 많은 학생이 고교 졸업장을 바탕으로 무엇을 하든 성실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교육하는데 목표가 있다. 그래서 모든 학생이 고교를 졸업하고 어떤 행태로든 대학에 들어가도록 격려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시간을 내어 학생들과 같이 대학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대학교에서 마련한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며, 교육 잡지의 대학순위 뉴스를 통해 최신 정보를 얻기도 한다. 때론 외부의 도움으로 실질적인 교육 정보나 프로그램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학부모 교실을 통해 알게 된 학원 원장이 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알짜배기 교육정보를 나누며 학업 성적이 좋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혹은 학업 성적이 월등히 우수한 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학교를 소개하면서 학생들에 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며 고민하고 있다. 특히 한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좋은 정보를 감추기보다는 저소득층 학생이 많은 한인타운 중심의 우리 학교에 관심을 가지며 무료로 도와주려 애쓰고 있다. 원장님의 도움으로 10학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온 학생이 드디어 올해 대학 원서를 쓰게 되었다. 일단 성적이 좋으니 어떤 명문 주립대를 지원하든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학비에 민감할 때는 전액 장학금을 주는 인지도가 높은 명문 사립대를 욕심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적이 좋은 많은 한인 학생들이 소규모 명문 사립대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이다. 학업 성적은 좋지만 교수들과 일대일 혹은 그룹으로 토론하거나 에세이를 쓰는 것에 자신이 없는 학생들은 거의 소규모 사립대학을 꺼린다. 물론 명문 사립대에 원서를 넣어보긴 하지만 결국 마지막 결정은 다수에 묻어가는, 소수계 학생에게 편한 UC에 입학한다. 그래도 가끔은 성적이 우수하고 영어를 잘하며 조건을 갖춘 한인 학생은 원장님의 실질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학생의 개인적인 취향과 열정에 맞는 학교를 선택한다. 그뿐 아니라 어려운 가정 형편이나 가정의 특수 상황으로 인해 성적이 약간 모자라더라도 또 그 상황에 맞는 학교를 추천한다. 대학에 가서는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히려 대학 적응을 잘하며 한 단계 더 성숙해지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명문대 혹은 명문 사립대를 갈 수 있는 학생들의 첫 번째 조건은 GPA(성적)이다. 아무리 학생이 운동을 잘하거나, SAT/ACT 성적 혹은 과외활동이 좋더라도 우선 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가정의 특별한 상황을 편지에 써보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은 정말 '특별한' 경우다. 대부분 일단 GPA가 높아야하고 SAT/ACT 성적 그리고 교내활동 그리고 과외활동 등을 보면서 학생이 4년을 어떻게 보냈는 지 그리고 고교 4년 동안 어떻게 대입 준비를 했는지 알려야 한다. 올해도 원장님을 통해 얻은 입시 정보로 두 명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대학 추천을 했다. 학생들이 그 학교에 합격하여 입학을 할지 안 할 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그래도 나는 그 두 학생이 많은 대학에 원서를 쓰면서 가슴 졸이며 지낸 지난 4년 동안의 모든 것을 담아내리라 믿는다. 그리고 어느 대학을 가든 나는 그들의 선택을 믿는다. 설령 그 선택이 옳지 않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리라 믿는다. 누군가를 위해 매년 재능기부를 하는 원장님은 세리토스 지니어스학원 원장인 김도원씨다. 나는 김 원장과 내년에 대학에 보낼 학생들을 돕기 위해 오늘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것이다.

2014-11-23

[지 선생의 교실 밖 세상]진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LA통합교육구(LAUSD) 산하 초·중·고교가 두 달간의 방학을 마치고 일제히 개학을 했다. 교사들은 방학 중에도 새로운 교과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느라 바빴을 것이고 행정가들은 그러한 새로운 시도에 대비하기 위해 방학 중에도 고심하셨을 것 같다. 더욱이 이번 학기부터는 기존의 학생정보시스템(SIS)이 새 프로그램인 MiSiS(My Integrated Student Information System)로 바뀌어서 나는 새 학기 시작 두 주 전부터 새로운 프로그램 사용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MiSiS는 인터넷을 통해 학생의 정보, 출석, 혹은 성적을 언제 어디서나 빠르고 쉽게 이용 가능하여 교사뿐 아니라 부모님 역시 집에서 자녀의 출석과 성적 등을 볼 수 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 동안 현장의 교사들은 이중 일을 하느라 학기 초부터 진땀을 빼고 있다. 나는 방학 시작 후 여름 학기도 마다하고 두 주간의 일정으로 잠시 한국을 다녀왔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늘 걱정스럽게 사는 친구 얼굴 잠깐 보고 곧장 지인이 있는 제주도로 내려갔다. 중년의 여유인지 아님 객기인지 전화기와 시계 없이도 별 불편함 없는 지인의 생활에 슬그머니 묻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내 나이가 이미 다 성장한 자식과 연로하신 부모님 사이의 낀 세대로 그 중간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나이다. 일을 손에서 놓기는 너무 빠르고, 40대의 열정이 몸의 무게로 묵직하게 내려앉은 50대이기에 정말로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으로만 조급해진다. 또 나보다 나이가 있는 지인들을 만나면 곧 나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어 그들의 노후의 모습에 나의 미래를 넣어보기도 한다. 또한 내 나이가 주는 여유로움과 함께 몸이 주는 민감한 신호를 느끼면서 서서히 건강문제에 귀가 더 쫑긋해진다. 몸에 좋다는 건강보조 식품보다는 자연이 주는 자가 면역에 더 마음이 끌리고, 약보다는 자연이 주는 바람과 땅의 기운에 더 기분이 좋아지며,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보다 더 좋아해서 코드가 맞는 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겐 힐링이자 배움이고 도전이다. 그런 새로운 느낌을 제주의 투박한 삶에서 눈으로, 마음으로 확인하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눈 것이 이 여름 내가 누린 행복이다. 그런 행복감은 내가 젊음의 문턱에서 낯선 곳에서의 하루를 보내며 무서워 덜덜 떨고 가슴 졸이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강렬하지도 짜릿하지도 않은 그저 별다른 감흥 없이 밋밋해도 인생의 한 단계 쑥 올려진 것 같은 그 무게감이 나는 좋다. 중년이 주는 중압감이라기보다는 나는 묵직한 그 무게가 왠지 내 신발 사이즈처럼 익숙하다. 이렇게 술술 실타래 풀리듯 등 떠밀려 간다 해도 내 인생이 나이대로 순리대로 또 어른 말씀대로 흘러가고 있음이 신기할 뿐이다. 그래서 순간이 소중해지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축복이고 선물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마주하는 사람은 팽팽하게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입시생들이고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방지축 청소년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만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더라도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다. 교육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무조건 쪼아대는 것이 최선의 교육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니 자연히 알아진다. 제주도에서의 일상은 시장에 가서 사람 사는 모습 구경하고 신선한 공기 마시며 운동하고 온전히 그 시간에 내어 맡긴 채 지냈다. 늘 손목 통증으로 고생하다 제주에 유능한 정형외과 의사가 도심에서의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이 자란 제주에 내려와서 반바지 입고 고향 사람들을 진료한다는 곳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의 말대로 아픈 곳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냥 아픈 것을 인정하고 바른 자세를 취하다 보니 어느 순간 손목을 움직여보며 '어, 아팠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통증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괜찮다. 견딜만하다. 지인의 손에 이끌려 제주 보건소에서 신체검사도 받았다. 내 걱정과는 달리 신체 점수는 74점이다. 건강 점수가 C학점인 셈이다. 그래도 D 나 F 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인생의 먼길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며 간다는 것이 인생의 길을 내려가며 새삼 느끼는 일이다. 서로 다독여주고 마음 써주며 아픈 곳을 살살 긁어주는 그런 마음씀씀이 우리에겐 산삼보다 더 귀한 보약이다. 명약이다.

2014-09-14

[지선생의 교실 밖 이야기]"올 방학은 자녀와 함께 하세요"

LA교육국의 2013-14년도 학사 일정이 지난 5일 일제히 마쳤다. 예년보다 두 주 일찍 방학을 시작함과 동시에 두 주 일찍 개학을 하게 돼 올 가을학기는 8월 12일에 시작한다. 매년 5월에 치르는 AP시험(Advanced Placement Test)이 교과과정을 끝내기도 전에 진행돼 많은 학생이 시험준비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해마다 학사일정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 그뿐 아니라 올 가을부터 새롭게 바뀌는 공통교과과정(Common Core Standards)에 따라 기존의 가주학력 평가시험(STAR) 대신 '스마터 밸런스(Smarter Balanced Assessment Consortium)'라는 새로운 시험이 컴퓨터를 이용해 시행될 예정이다. 모든 공립학교의 교과과정이 새로 바뀌면서 학교마다 행정관들은 공통교과과정과 스마터 밸런스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방학을 맞는 학부모들은 그런 변화에 자녀를 대비시키려면 방학 동안 어떤 준비를 시켜야 할지를 많이 질문한다. 방학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학년을 맞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그 기간은 각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시켜주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혹은 경험을 통해 자녀를 한 뼘 더 성장시킨다. 평소 부모가 자녀와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나 자녀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 시간 역시도 자녀와 부모가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각 가정의 상황에 맞게 가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면 좋은 여름방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자녀가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자녀가 흥미로워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활동을 권해주길 바란다. 서머 프로그램은 무조건 비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자녀가 활동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경험하며 그것을 통해 배움을 가지면 된다. 커뮤니티에서 하는 좋은 무료 프로그램도 괜찮다. 자녀가 지난 학기에 'D'나 'F'을 받았으면 여름 방학을 통해 보충해야한다. 'C'학점을 받았을 경우 보충할 수 없으며 했더라도 GPA에는 계산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이번 여름 학기에는 교육국 예산 부족으로 과목 보충을 위한 성인학교 수업이 없으므로 재학 중인 학교에서 여름학기를 신청해야 한다. 수학이나 과학의 경우 미리 과목을 택해서 다음 단계의 과목을 택할 수 있는 상급반을 위한 수업은 없고 'D'나 'F'을 받은 학생을 위한 필수 과목만을 제공한다. 학생이 가고 싶은 대학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그 학교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택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같은 UC대학이라도 전공에 따라 과목 선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SAT 혹은 ACT점수가 부족한 경우 여름 방학 기간에 준비하고 9월 시험에 대비하면 된다. 특히 봉사활동이나 과외활동이 충분치 않은 경우 방학을 이용해 부족한 시간을 채우거나 활동 관계자와 만나 그동안의 활동이나 프로그램에 대해 평가해보는 것도 좋다. UC계열 지망 시 해야하는 개인 에세이에 대해 어떻게 쓸 것인지 방학 동안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가주의 교육과정이 바뀐다고 해서 자녀의 교육관이나 교육 방향이 변경될 수는 없다. 새로운 교과과정이나 학습 능력 평가 기준은 21세기 교육 목표에 따른 시대적인 변화일 뿐이다. 변화를 수용하고 그 변화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면서 자녀에게 맞는 학습방법을 찾으면 된다. 교육은 자녀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 또한, 자녀의 교육 목표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함께 풀어야하는 공동 과제다. 그러니 각 가정은 자녀에 맞춰 교육목표를 세우고 자녀가 성공적으로 대학을 진학하도록 교사와 협력할 것을 부탁한다. 새 학기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공통 교과과정과 스마터 밸런스 시험을 위해 방학 동안 부모들이 따로 준비할 것은 없다. 각 학교는 새 학기부터 부모님들을 위한 공문이나 모임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학부모들에게 알릴 것이다. 따라서 새 학기부터 학교에서 발송되는 편지는 잘 읽어보고 학교 모임에 꼭 참석해 새로운 변화에 적극 대처하길 바란다. 특히 부모님들이 수시로 학교를 드나들며 학교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자녀에 대한 관심을 더 높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건 새 교육정책에 대한 고민보다 더 우선시해야하는 일이다.

2014-06-22

[지선생의 교실 밖 이야기] 철저한 자기관리가 사회생활 첫걸음

2012년 6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시행된 30세 이하 불법체류자를 위한 추방유예(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조치가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DACA 신청자들은 미국에 16세 이전에 입국하여 5년 이상 계속 거주했으며 고교 재학 중이거나 졸업했으며 전과 기록이 없어야 한다. 이 법안은 지난 연말 드림법안(불체학생 구제안)을 기다리다 지친 젊고 유능한 인재들에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미국 내 기업들에게는 부족한 고급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행히 많은 한인 청소년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런 이유로 나는 그 동안 소식이 뜸했던 졸업생들과 만남을 가지며 그들이 사는 특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가 능통한 C도 그런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부 명문 공대를 졸업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매주 있는 시험과 수업을 따라가느라 뜬눈으로 밤샘하기가 허다했으며 학점 따느라 친구를 사귈 마음의 여유나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이 투자이민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그는 '졸업을 꼭 해야 하나 어차피 취업도 못할 텐데' 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4학년이 되자 신분에 대한 고민이 현실적인 문제로 됐다고 했다. 사실 졸업한 제자들 중에는 체류신분 때문에 비싼 학비 문제로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커뮤니티칼리지로 방향을 틀든가 아니면 신분이 해결될 때까지 임시직으로 취업전선에 나서던 한인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다행히 C는 졸업하자마자 추방유예 정책의 혜택을 받아 소규모 미국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어엿한 주류회사의 엔지니어가 된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회사와 임금 협상을 할 때 나름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당당하게 제시했지만 나중에 입사 동기에게 확인해 본 결과 그 동기는 자신보다 1만 달러 정도 더 받고 있었다며 억울해 했다. 나는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자국을 내딛은 사회 초년생에게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전략을 얘기해 주기보다는 중국집에 마주앉아 그가 좋아하는 매운 돼지고기 볶음과 자장면을 나눠 먹었다. 안 그래도 고민이 많을 그에게 더 무슨 조언이 필요할까 싶어 얼굴이 예쁘다는 그의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꽃만 피웠다. 그와 헤어지고 난 후 여전히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의 고민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카톡을 통해 그에게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조언했다. 위인들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그들의 신념이 자신뿐 아니라 어떻게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웠다고 평가 받는 프랭클린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시간관리로 미국 실용주의 정신을 완성한 사람이다. 프랭클린을 성공으로 이끈 13가지 인생지침인 절제·침묵·질서·결단·검약·근면·진실함·정의·온건함·청결·침착함·순결 그리고 겸손함은 그가 성공을 거둔 비밀 열쇠다. 그가 일생을 통해 지킨 13가지의 대부분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 교실 칠판 양 옆에 붙어있는 교훈과 급훈에 항상 등장하는 문구였다. 가슴에 절절히 와닿는 진리의 말이다. 나는 C에게 그리고 인생을 막 시작하는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20대에는 프랭클린의 13가지 인생지침을 가슴에 품고 정직하게 지식을 쌓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철들어가면서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 있고 겸손한 지식인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성실하게 올바른 길로 끝까지 걸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호락호락할 것 같은 미국의 저변에 유유히 흐르는 강인한 정신 이것이 미국의 힘이구나 하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2014-05-16

[지선생의 교실 밖 이야기] 철저한 자기관리가 사회생활 첫걸음

철저한 자기관리가 사회생활의 첫 걸음 2012년 6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시행된 30세 이하 불법체류자를 위한 추방유예(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조치가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DACA 신청자들은 미국에 16세 이전에 입국하여 5년 이상 계속 거주했으며, 고교 재학중이거나 졸업했으며 전과 기록이 없어야 한다. 이 법안은 지난 연말 드림법안(불체 학생 구제안)을 기다리다 지친 젊고 유능한 인재들에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미국 내 기업들에게는 부족한 고급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행히 많은 한인 청소년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동안 소식이 뜸했던 졸업생들과 만남을 가지며 그들이 사는 특별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어, 영어, 그리고 중국어가 능통한 C는 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 서부 명문 공대를 졸업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매주 있는 시험과 수업을 따라가느라 뜬눈으로 밤샘하기가 허다했으며, 학점 따느라 친구를 사귈 마음의 여유나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이 투자이민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C는 '졸업을 꼭 해야하나, 어차피 취업도 못할 텐데'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4학년이 되자 신분에 대한 고민이 현실적인 문제로 연결이 됐다고 했다. 사실 졸업한 제자들 중에는 체류신분 때문에 비싼 학비 문제로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커뮤니티 칼리지로 방향을 틀든가, 아님 신분이 해결될 때까지 임시직으로 취업전선에 나서던 한인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다행히 C는 졸업하자마자 추방유예 정책의 혜택을 받아 소규모 미국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어엿한 미 주류회사의 엔지니어가 된 것이다. 그는 인터뷰하면서 회사와 임금협상을 할 때 나름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당당하게 제시했지만 나중에 입사 동기에게 확인해본 결과 입사동기는 자신보다 만 불 정도 더 받고 있었다며 억울해 했다. 나는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자국을 내딛은 사회 초년생에게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전략을 얘기해 주기보다는 중국집에 마주 앉아 그가 좋아하는 매운 돼지고기 볶음과 자장면을 나눠 먹었다. 안 그래도 고민이 많을 그에게 더는 무슨 조언이 필요할까 싶어 얼굴이 예쁘다는 그의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 꽃만 피웠다. 그와 헤어지고 난 후 여전히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의 고민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다가 카톡을 통해 그에게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어보라고 조언했다. 위인들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그들의 신념이 자신뿐 아니라 어떻게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프랭클린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시간관리로 미국 실용주의 정신을 완성한 자다. 프랭클린을 성공으로 이끈 13가지 인생지침인 절제.침묵.질서.결단.검약.근면.진실함.정의.온건함.청결.침착함.순결 그리고 겸손함은 그의 성공의 비밀 열쇠다. 그가 일생을 통해 지킨 13가지의 대부분은 나의 초등학교 시절, 교실 칠판 양 옆에 붙어있는 교훈과 급훈에 항상 등장하는 문구였다. 가슴에 절절히 와닿는 진리의 말이다. 나는 C에게, 그리고 인생을 막 시작하는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20대에는 프랭클린의 13가지 인생지침을 가슴에 품고 정직하게 지식을 쌓으라고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 철들어 가면서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 있고 겸손한 지식인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성실하게 올바른 길로 끝까지 걸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호락호락할 것 같은 미국의 저변에 유유히 흐르는 강인한 정신, 이것이 미국의 힘이구나 하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2014-05-04

[지선생의 교실 밖 이야기] 자녀공부 끝나도 여전한 수퍼맘, 억척 아줌마의 따뜻한 삶 부러워

오랜만에 지면 나들이를 한 탓에 몇몇 부모님께서 안부 전화를 주셨다. 자녀와 함께했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또 여전히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야기 보따리의 매듭을 푸는 것이 나에게는 일종의 즐거운 나들이임에는 분명하지만 당사자들에겐 본인만이 가슴 속에 간직했으면 하는 것 일수도 있어 또 한편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 부분은 부모님들이 공동의 선을 위해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아줌마가 있다. 그녀와는 17년 전 미 동부 여행을 하는 도중 서로 한눈에 반해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 양호교사로 있으면서 남매를 미국 유학시킨 억척 아줌마다. 아줌마는 자녀에 대해 무심한듯 하다가도 어쩌다 딸과 아들에게 쓴소리를 퍼대고는 울화가 치밀면 내게 전화한다. "내가 자기들한테 투자한 게 얼만데 지금 그러고 사냐"고, 하지만 결론은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넘어가자"고 했었다. 그 아리한 순간도 분명 지나갈 것이고 또 지나고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덮어질 것임을 알기에. 지난번 LA를 방문한 아줌마는 드디어 아들이 18년 만에 직장을 통해 영주권을 받았다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아들은 "그놈의 영주권 때문에 지난 18년을 너무 안이하게 산 것 같다"며 가슴 아픈 얘기를 에둘러 얘기했는데 아줌마는 아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들에게 대학원 준비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슬쩍 내보였단다. 또 공부를 잘했던 딸이 그냥 살림만 하며 지내는 것이 국력낭비라며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감과 동시에 딸에게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아줌마는 학부 때 과학을 전공한 딸이 간호학을 공부하는데 자신감을 보였다며 신이 나셨다. 딸이 공부하는 동안 유모 비용과 학자금을 지원해줘야 하지만 딸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해 했다. 그렇게 아줌마는 두 자녀의 실질적인 경제문제까지 해결해주고 미국을 떠났다. 사실 아줌마는 본인의 삶도 종교적인 신념을 옆구리에 끼고 실천하며 살았다. 본인이 힘들게 살았을 때에는 입으로, 손으로, 발로 뛰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살폈다. 아줌마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갔다. 집도 평소의 생각대로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안식처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살더니 아예 제주도 바닷가에 집을 짓고 대문에 태극기 떡하니 꽂아놓고 또 모두의 별장으로 개방했다. 삶의 쉼표가 필요한 이들에게 따뜻한 아랫목과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선물해주고 삶에 지친 나그네들과 따뜻한 차를 나누며 노느라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 아줌마는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수퍼 맘이다. 그런데 사실 아줌마는 평생을 배우며 그 배운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았다. 지금도 또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뭔가를 배우고 있다. 다음에 나를 만나면 새로운 비장의 무기로 나를 웃길 것이고 또 약올리면서 폼 잡을 것이 분명하다. 나도 이분처럼 폼나게 살고 싶다. 인생은 폼생폼사다.

2014-04-06

[교실 밖 세상] 노력하는 오늘이 명문대로 이끈다…좋아하는 꿈은 포기하지 말아야

오랜만에 지면을 통해 부모님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가슴이 두근 반이다. 이 시간을 통해 부모님들과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또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만남이 한인타운 한복판에서 펄펄 살아 움직이는 소중한 소통의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직 15년차에 들어서다 보니 요즘은 자주 졸업생들이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A가 그런 제자중에 한명이다. A는 고교 4년 동안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대학 졸업 후 일 년간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마음의 결정을 한 후에 법대에 진학했다. 변호사가 된 지금도 특별한 날에는 그와 문자로 연락을 하며 지낸다. 그리고 가끔은 그가 자주 가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눈다. 제자와 마주 앉아 나누는 세상 이야기는 정말 신이 난다. 나에겐 그것이 쉼이자 힐링이다. 그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따뜻한 위로를 느낀다. 나는 그가 제자라는 사실보다 듬직한 친구를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그런 기분이다. B는 미술에 재능을 보이던 여학생이었다. 재학시절 학과 공부도 뛰어나 교사들에게도 칭찬받는 학생이었다. 졸업후 미술사를 전공한 후 전액 장학금을 받아 대학원을 마친 그녀는 주류 사회의 화랑과 박물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주일 내내 고된 일을 하면서도 풀타임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탔다고 같이 저녁 먹고 싶다고 문자를 보낸 딸내미 같은 제자다. 어느 날 그녀는 한국에 있는 화랑에서 일을 하게 됐다고 연락해 왔다. 한국에 가면 그 계통으로 더 많이 일을 배울 수 있다며 어렵지만 한 번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타고다니던 차를 팔아 오피스텔 전세금을 마련했다는 그녀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애처로왔지만 떠나는 날까지 성실하게 일하는 그녀가 내심 기특하기만 했다. A와 B는 자신의 길이 보일 때까지 창 밖의 꿈이 손에 닿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그런 학생들이었다. 한인타운에 만연해 있는 교육관련 과대 광고나 부모들을 현혹시키는 명문대 진학 전략에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가느라 맘 고생도 많았고 남모르는 눈물과 구슬땀도 많이 흘렸다. 나는 지금 그들의 현재 모습을 보며 그들의 미래를 떠올린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어느 누구의 말처럼 나는 끝날 때까지 그들을 지켜볼 것이다. 그들이 한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그릇을 넓혀갈 때까지 뒤에서 지켜볼 것이다. 그들의 값진 젊음의 노력이 열매 맺어 타운을 빛내고 한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그날을 기대한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열정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 그것이 명문대 학생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명문대 학생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느 순간 명문대 학생이 되어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교육 정책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201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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